반년 넘게 지속되는 의대 증원 사태에서 선배 의사들이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만 기댄 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모든 걸 내놓고 병원과 학교를 나온 지 6개월이 넘었는데 그동안 선배 의사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태 해결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한외과의사회가 8일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선배 의사들을 향해 “실망했다”, “절망감을 느낀다”는 등 원성이 나왔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는 사직 전공의의 호소도 있었다. 외과의사회는 이날 학술대회에 ‘의대생·전공의와 함께하는 의료정책’을 주제로 한 특별세션을 마련했다. 사직 전공의와 학부모들은 특별세션 질의응답 시간을 활용해 선배 의사들에게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3년 차 진급을 앞두고 사직서를 냈다는 외과 전공의 A씨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A씨는 하루빨리 병원으로 돌아가 수련을 마치고 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외과 의사로서 “손이 굳을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A씨는 “외과 의사를 하고 싶다. 빨리 돌아가서 수련받고 싶다. (수련교육 기간이 4년에서) 3년으로 줄어서 아쉬운데 한창 수술방에서 수술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계속 손을 놓고 있다. 너무 불안하다”며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이러고 있는데, 앞으로도 상황이 똑같이 진행되면 내년 3월에도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는 “평생 바이탈(Vital)에 몸 바쳐 일하고 싶은데 못하게 될까 너무 무섭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부다. 정부는 (의대 증원 관련) 회의록이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 폐기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런 부분을 더 활용해서 여론에 어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다”며 “정치적 명분이 필요하니 조금 더 기다려야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대처해줬으면 한다. 가만히 있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의대생 학부모인 B씨는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하자는 외과의사회 요청으로 참석했지만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 의사인 개원의나 교수들이 전공의와 의대생 뒤에 숨어 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B씨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할 수 있는 건 사직과 휴학뿐이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교수와 이 자리에 있는 의사들이 이 일을 해결해 줘야 한다. 전공의와 학생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정부와 맞서 싸우겠느냐”고 했다.
B씨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내놓았다. 그 사이 2차 병원은 돈을 긁어모은다는 소문도 돈다. 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들은 돈 한 번 벌어 본 적도 없는데 여론은 ‘너희 같은 의사는 필요 없다’고 한다”며 “이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교수들이 한 달이라도 일을 접었다면 더 빨리 해결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교수들은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며 그 자리에 계속 있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만 희생할 게 뻔한 이 과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가. 1년 더 휴학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정부가) 6개월 버티면 이긴다고 하니 그 이상 희생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며 “여론을 돌려야 한다면 국민과 소통할 수 있게 대한의사협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B씨는 “지난 2월 이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학부모로서 절망감을 느꼈다. 울분을 토했고 해결 방안이 뭘까 고민했다. 하지만 6개월이 넘어가면서 포기 상태”라며 “대통령이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하고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해결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해 놓고 다음 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이 사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일부 교수, 예과 1학년 손해라며 복귀 압박…두고만 볼 거냐"
일부 교수가 의예과(예과) 1학년 학생들에게 연락해 복귀를 종용한다며 의협 차원에서 조치해야 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학년과 달리 예과 1학년들은 내년에 복귀하면 2025학년도 입학생과 같이 수업을 들어야 해서 손해가 크다며 올해 돌아와야 한다고 설득한다는 것이다.
예과 1학년인 자녀를 뒀다는 C씨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C씨는 “학교에서 본과(의학과)와 달리 예과는 실습이 없으니 강당이나 영상 수업을 듣고 있으면 본과로 진급하기 전까지 시설을 확충하겠다며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있다”며 “일부 교수는 예과 1학년 학생들과 일대일 상담을 통해 내년에는 증원된 학생들로 인해 (수업받는 인원이) 배가 되는데 너희들만 손해를 볼 필요가 있느냐고 압박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일부겠지만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학생들이 불안하지 않게 해줄 필요가 있는데 그런 게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은 선배 의사들이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을 움직이려면 환자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만이라도 지켜야 한다. 지킬 수 있는 생명은 지켜야 한다”며 “그래야 여론이 나빠지더라도 의사에 대한 비난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또한 의대생들을 회유한다는 증거가 있으면 관련 교수를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했다.
외과의사회 김종민 보험이사(민병원 대표원장)는 “의약분업 이전부터 항상 선배들은 학생들을 총알받이로 내몬다고 야단맞았다. 하지만 절대 후배들을, 특히 막내인 예과생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책임지고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