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 가스가 어떻게 마취제가 됐을까?" 아산화질소는 감시와 조절 아래 쓰이는 의료 가스입니다 2026-09-21 hit.23 |
|
<명의칼럼 | 조채연 마취과장>
아산화질소는 왜 웃음 가스로 불릴까? 수술과 치과 진료에 쓰이는 마취 가스 중에 아산화질소(N₂O)라는 기체가 있다. 흔히 웃음 가스로 불리는 이 기체는 오랫동안 수술실이 아니라 파티장의 유흥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흡입하면 뇌의 도파민 체계가 자극돼 일시적인 행복감이 생기고, 긴장이 풀려 실없이 웃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1799년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는 이 기체를 직접 들이마셔 보고 통증이 잊히고 기분이 들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저서에 외과 수술의 통증을 줄이는 데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까지 적어 두었지만, 당시 사회는 이 제안에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영국과 미국의 상류층 사이에서는 가스를 마시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즐기는 모임이 유행했고, 19세기 초 순회 강연자들의 단골 소재가 됐다. 오늘날 치과와 수술실에서 쓰이는 이 기체는, 한때 웃음소리에 가려졌던 가능성이 오랜 시간을 돌아 마침내 의학의 영역에 들어온 셈이다.
마취제로 인정받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이 기체가 마취제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낸 계기는 1844년 한 치과의사가 목격한 장면이었다. 호러스 웰스는 웃음 가스 시연회에서 가스를 마신 참가자가 넘어져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다음 날 스스로 가스를 흡입한 뒤 동료에게 사랑니를 뽑게 했고,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확신을 얻은 웰스는 이듬해 공개 시연에 나섰지만 가스 주입량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환자가 비명을 질렀고, 청중은 그의 시연을 실패로 받아들였다. 이 일로 웰스는 의학계의 신뢰를 잃었고, 이후 마취제로서 아산화질소의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의사로서의 활동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동료였던 윌리엄 모턴은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를 써서 1846년 공개 수술 마취에 성공했고, 웰스의 기여는 오래 묻혀 있었다. 그러나 1860년대 들어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치과 치료가 다시 활발해지면서 임상 경험이 축적됐고, 이후 산소와 함께 투여하는 방법과 장비가 발전하면서 의료현장에 정착했다.
아산화질소는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나? 아산화질소는 폐를 통해 혈액으로 흡수된 뒤 중추신경계에 작용한다.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수용체(NMDA 수용체)의 작동을 억제하고,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몸속 물질(엔도르핀)의 방출을 촉진한다.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길목을 막고 안도감을 유도하는 원리다.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은 채 대부분 폐로 그대로 배출되기 때문에 회복이 빠른 편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다만 이 기체만으로 전신마취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제로는 권하지 않는다. 필요한 농도가 매우 높아 산소가 부족해질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수술실에서는 아산화질소를 단독으로 쓰기보다 산소와 섞어, 다른 흡입 마취제나 정맥 마취제를 돕는 보조제로 사용한다.
어떤 상황에서 주로 쓰이나? 아산화질소가 특히 유용한 상황은 통증만큼이나 긴장이 문제가 되는 경우다. 치과 치료에 대한 공포가 심한 환자, 분만 과정에서 통증을 덜어야 하는 산모, 간단한 처치를 받아야 하는 어린이가 대표적이다. 임산부나 어린이에게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적절한 농도로 산소와 혼합해 투여하면 부담이 비교적 적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문의가 상태를 지켜보며 농도와 투여 시간을 조절한다는 전제 위에서의 이야기다. 같은 기체라도 얼마나 진한 농도로, 얼마나 오래, 어떤 상태의 환자에게 들어가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과거의 ‘오락 목적으로 사용된 가스’가 오늘날 정밀한 의료 가스로 쓰일 수 있게 된 것은 물질 자체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용량을 조절하고 상태를 감시하는 체계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웃음 가스를 함부로 마시면 위험한가? 의료 현장 밖에서 아산화질소를 반복해 흡입하는 것은 분명한 위험을 동반한다. 체내 비타민 B12의 활성을 억제해 신경 손상이나 빈혈로 이어질 수 있고, 유흥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들이마실 경우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심각한 손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0년 전 파티장에서 웃음거리로 소비되던 기체와 오늘날 수술실에서 사용되는 기체는 같은 물질이다. 하지만 그 쓰임을 가르는 것은 산소와의 비율, 투여 시간,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적절한 사용을 판단하는 의료진의 존재다. 수술이나 시술을 앞두고 있다면 앓고 있는 질환이나 복용 중인 약, 과거 마취 경험 등을 의료진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취에 쓰이는 가스와 약은 환자의 상태와 수술 방법 등을 종합해 결정되며, 안전한 마취를 위해서는 환자가 제공하는 정보 역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